YUN SUKNAM | 윤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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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 
'그림자와늘어난팔...여성주체...', 한겨레,2015.10.01
그림자와 늘어난 팔…여성 주체의 의지 표현


윤석남의 <종소리>에서 두 여성의 늘어난 팔은 억압적인 현실로부터의 탈출과 확장을 상징한다.

[백민석의 리플릿] (14) 여성이 보는 아름다움에 대해 여성이 말하다
내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2003년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참사의 생존자들을 다룬 취재물을 보고 나서였다. 정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한 생존자가 한낮에 집을 나와서는, 담벼락에 바싹 붙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두려운 듯 부들부들 떨면서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결코 길 가운데로 나서지 못했다.
이러한 장애는, 대구 지하철 참사 같은 평상시 인간의 체험을 뛰어넘는 큰 사건을 겪어 심리적 외상을 입었을 경우 나타난다. 미국정신의학회가 마련한 진단 기준(진단편람 4판)에 의하면 이 분류에는 지속적인 기간 동안의 인질, 전쟁포로, 강제수용소 생존자가 포함된다. 놀라운 건 이들과 함께 가정폭력, 아동기의 학대 그리고 아마 성매매 종사자를 의미하는 듯한, 조직화된 성적 착취 체계의 생존자가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전쟁포로와 가정폭력의 희생자가 나란히 올라와 있는 분류에 내가 놀랐다는 사실이, 누군가의 눈엔 더 놀라울 수도 있다. 나는 흔한 경우 가해자가 되는 남성이며, 다행히 가정폭력의 상황에 놓여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가정폭력이 인간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신의학자 주디스 허먼의 책을 읽기 전까진 거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이들, 흔한 경우 피해자가 되는 여성에겐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이어서 놀라울 게 하나도 없는 사실일 수 있다. 놀라거나 콧방귀를 뀌거나. 어느 쪽이 다수일까.


윤석남 개인전 리플릿.

어쩌면 이 사실엔 더 많은 독자가 놀랄지도 모른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전쟁에 나간 남성보다 일상생활 속의 여성들에게 더 일반적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은 1970년대에 여성해방운동이 이루어지고 나서였다. 주디스 허먼의 <트라우마>에 의하면 그 이전의 여성들에겐 가정폭력 같은 “사적인 삶의 포악성에 붙일 만한 이름이 없었다. 공적 영역에서 이미 잘 마련되어 있는 민주주의가 가정에서의 원시적인 폭정이나 교묘한 독재와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생각하지 못했다.” 초기 여성운동가들은 여성의 문제를 “이름이 없는 문제”라고 불렀다.

데이브 그로스먼의 <살인의 심리학>에는 전쟁에서 남성이 겪는 정신적 손상에 대한 리처드 게브리얼의 진술이 나온다. “미군이 참전한 20세기의 모든 전쟁에서 적의 포화로 전사할 가능성보다 정신적 사상자가 될 가능성, 즉 군생활의 스트레스로 상당한 기간 동안 심신의 쇠약을 겪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여성 억압 현실 고발하는 김인순과 윤석남의 작품들
남성인 내 눈엔 거슬리지만 이성애자 남성 미학 거부이자 상처 속 아름다움의 표현

두 책을 근거로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장애를 겪는 남녀의 많고 적음을 따져보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전쟁의 전사자 〈 전쟁의 정신적 사상자 〈 가정폭력의 피해를 당한 여성.
김인순의 <그린힐 화재에서 스물두 명의 딸들이 죽다>(1988년)는 바로 그 인간의 평소 체험을 넘어서는 큰 사건이 배경이다. 안양의 봉제공장 기숙사에서 불이 나 여성노동자 22명이 사망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 기숙사는 소방서의 소방시설 점검도 받지 않고 직원들을 산재보험에도 가입시키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작품의 불길이 치솟는 기숙사 방 안은 80년대 여성의 현실을 상징한다. 열악한 노동환경에, 남성노동자의 4분의 1 수준의 임금이라는 성적 차별까지 더해진 현실이다.

또 다른 작품 <현모양처>(1986년)에는 이상한 자세를 하고 있는 그림자 하나가 등장한다. 그림자의 주인인 여성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굽히고 있는데, 여성에게서 솟아오른 그림자는 여성과 반대방향을 향하고 있다. 여성은 벌거벗은 채로 남성의 발을 씻겨주고 있다. 남성 역시 나체로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 남녀는 부부간이고 배경은 가정집의 욕실 같다. 남편이 호기롭게 벌리고 있는 사타구니 사이에는 축 늘어진 남근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내는 사각모를 쓰고 있다. 그녀는 고학력자다. 하지만 관람자가 정말 봐야 할 것은, 아내 위로 몸을 일으켜 이 가부장제 현실의 적나라함으로부터 돌아서는 그림자다. 그림자가 말하는 것은 뭘까. 현모양처라는 족쇄일 수도 있고, 추한 현실에서 얻은 심리적 외상일 수도 있으며,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일 수도 있다.
김인순의 작품들은 아름답지 않다. 적나라하고 추하다. 하지만 이 적나라한 추함은 그저 남성인 내 눈에만 그런 것일 수 있다. 작가인 김인순의 눈에는 다를 수 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뿌리는 실제 생명의 중요한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상처 입을 때만 세상에 드러난다는 점에서 여성의 현실과 닮았습니다.” 김인순에게 적나라한 추한 상처는 생명의 근원일 수도 있다. “파업투쟁을 할 때 어린 여성노동자들의 똑똑함, 강인함, 건강함은 그 시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고 느꼈어요. (…) 바로 그 아름다움은 그 시대의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아니면 볼 수 없었을 거예요.” 파업투쟁이라는 적나라한 현실의 상처 속에서도 작가의 눈은 생명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김인순의 작품 속 여성은 다양하다. 노동자이면서 현모양처이고 누명을 쓴 피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현실을 만드는 뿌리는 하나로, 가부장제 사회의 성차별 구조이다.

올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는 윤석남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다. 윤석남의 작품에서 김인순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것은 길게 늘어난 팔이다. <종소리>의 주인공인 두 여성은 결코 몸 전체로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몸은 주체의 자리를 지키려는 듯 한자리에 머물고, 대신 촉수처럼 늘어난 서로의 팔이 둘의 간극을 이어준다. 늘어난 팔은 윤석남의 작품 세계에서 반복되는 모티브다. 작품마다 명확한 방향을 갖고 있다. <연>에서는 막 피려는 연꽃의 형상으로 하늘을 항하고 있고, <어시장>에서는 고래를 머리에 인 여성의 팔이 바다의 수면 아래 고기떼를 향하고 있다. <붉은 밥>에서는 핏빛의 고봉밥을 누군가에게 건네주기 위해 기다랗게 늘어나 있는 팔을 볼 수 있다. <종소리>에서는 조선시대 시조시인이자 기생이었던 이매창과 현대의 윤석남의, 시대를 뛰어넘는 만남을 가능케 하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김인순의 그림자와 윤석남의 팔은 이처럼, 주체인 여성의 의지를 표현하는 살아 있는 기관으로서 작동한다. 윤석남은 책 <핑크 룸 푸른 얼굴>에서 늘어난 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늘어난다는 것은 확장의 의미도 있고, 끄집어내려는 의미도 있다.” 또한 “드로잉 할 때의 늘어남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닿게 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가두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튀어나가서 뭔가를 하고 싶고 만들고 싶은 욕망”이기도 하다.

주체의 자리가 안락하다면 굳이 팔이 늘어나야 할 이유가 없다. 윤석남이 보여주는 주체의 자리는 김인순의 자리보다 훨씬 추상화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고통의 강도까지 추상화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이 가정에서 주로 머무는 자리를 형상화한 <핑크 룸>, <블루 룸>, <부엌>, <핑크 소파> 등에서 현실은 뾰족한 갈고리라는 촉각적 오브제가 되어 나타난다. 날카로운 갈고리가 삐죽삐죽 솟아오른 소파와 의자는 여성이 가정을 지키는 현모양처의 자리에서도 결코 안락할 수 없음을 위협적으로 보여준다.
윤석남의 작품들도 내 눈에는 결코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는 그것이 누구의 눈에 맞춘 아름다움인가를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할 포스터가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재인용한 멀비의 말처럼, 가부장 문화에서의 시각적 아름다움은 “이성애자 남성의 정신구조에 맞추어 그가 여성 이미지를 성애의 대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디자인돼 있다.” 가부장 문화에서는 “이미지로서의 여성”과 그것을 보고 즐기는 “시선의 보유자로서의 남성”만이 상정된다.

김인순과 윤석남은 그러니까, 남성의 시각으로 대상화된 아름다움이 아닌, 여성 자신의 눈으로 다시 정의된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백민석 소설가


기사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711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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